서울 종로구의 일본대사관 앞, 매 주 수요일이면 만날 수 있는 여인들이 있다.
일본군에 의해 씻지못할 상처를 입은 위안부라 불리는 그녀들. 꽃도 피우기 전 10대의 나이로 일본군에 끌려가 성노예를 강요당했던 조선의 소녀들은 20만명으로 추정.
조선의 소녀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수요일마다 이 곳을 지킨다 21년째 이어지고 있는 수요집회는 할머니들이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의 현장이자 시민들, 국제적인 동참이 이뤄지는 화합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7년째 수요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일본인 후루야시 아야. 평소 안면이 있는 이용수 할머니를 찾아 대구로 찾아간다. 할머니의 깊은 상처를 들은 아야는 “일본인인 자신이 부끄럽다”고 하는데..
할머니들은 이제 피해자가 아닌 투쟁자로 전 세계를 향해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월 30일, 2007년 미 하원에서의 결의안 채택 기념행사로 워싱턴을 방문한 이용수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 미국이 한국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 심지어, 2010년 10월에는 미국 펠리세이즈파크시에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기림비가 처음 세워진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얼마전, 힐러리 국무장관은 ‘위안부’라는 용어 대신 ‘일본군에 의한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표현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위안부 문제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여성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때론 함께 슬퍼하고, 세상을 향해 함께 분노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집회를 하고있는 주한일본여성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흔적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 투어를 하며 국제적 연대로 투쟁하고 있는 뉴질랜드인 톰 레이니 스미스씨.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한국의 위안부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로 전하고 있는 일본인 사토 유키에씨.
3년간에 걸쳐 제작한 위안부 할머니들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 세계로 메시지를 전하는 태미 추씨.
이들은 왜 한국의 위안부에 대해 가슴깊이 슬퍼하고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걸까.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수 234명. 2012년 현재 생존자 60명.
이제 할머니들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오랜 외침 속 결실을 기대하며 세계적인 움직임과 그 희망의 빛을 찾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