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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018-06-06
기원 전 7세기, 유대 왕국을 멸망시키고 강한 신바빌로니아를 세웠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어느 날 하늘을 향한 탑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바로 바벨탑이다.
비록 신의 저주였는지, 이웃나라의 시기였는지는 어느날 문득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그것은 신에 맞선 인간의 도전이자 왕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인간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 솟아오른 탑의 시작은 '하나의 계단'이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계단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그래서 계단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단의 인간화가 이뤄지면서 계단이 얻은 것은 바로 '권력'이었다.
지배자의 권력이 강조될수록 계단은 더 크고 화려해져갔다.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계단13] 중 첫 번째를 차지했을 정도로 가파른 앙코르와트의 계단은 왕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베트남 카이딘 황릉의 장대한 3단 계단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자기만의 영욕을 추구했던 한 황제의 탐욕이 스며 있다. 조선 후기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 계단의 화려한 월대에는 무너진 왕권회복을 위한 흥선대원군의 명확한 목적의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계단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봉건 왕조의 몰락과 산업혁명을 통한 급속한 기계문명의 성장 속에 계단은 그 권력도, 권위도, 상징성도 잃고 삭막한 현실로 내려앉았다. 계단을 대체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발전하면서 계단은 어느새 한숨이 절로 나오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계단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욕망도 함께 사라진 것일까.
계단의 시작이 '수직의 욕망'이었다면, 그로 인해 번성했던 권력이었다면 지금 우리에게 다가선 계단은 '수평의 욕망'이다. 피난민의 아픔이 담겨 있던 부산 168계단은 역사의 추억을 넘어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작은 바닷가 마을 벼랑에 서 있던 낡은 서피랑 계단은 소설가의 글과 화가의 그림을 입고 문화축제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대도시 전철역의 회색 계단은 한 걸음에 착한 마음을 담는 기부계단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권력을 향한 수직의 계단에서 더불어 함께 살기를 꿈꾸는 수평의 계단으로 지금 계단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서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계단을 주목하는 이유다.



